[프랑스 문학] 임마누엘 카레르 적 #책을읽는기계

사색 노트 

잎 꽂이를 한지 이 주 정도가 지났는데, 줄기 한 가닥 빼곤 기미가 없다. 줄기 하나를 물에 감가두니 뿌리가 자랐다. 나는 어떤 목마름으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이 주가 더디다고 말하는 나인데, 나의 믿음과 목마름은 어떤 노력으로 뿌리를 내리는가. 흔들리는 것은 나였으며, 나의 행복에 기다림없이 재촉한 것도 나였다. 자유를 준다. 




적 / 임마누엘 카레르


시커먼 가죽 틀만 남을 때까지 차츰 그의 내부를 갉아들어갈 커다란 큰 흰 공백, 그 심연으로 부터 냉랭한 공기가 빠져나와 노련한 삽화가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짓말 하지는 않았지만 제 감정의 밑바닥은 한번도 털어놓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땐 아무것도 숨길게 없었는데도 저는 그 그리움, 그 슬픔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말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톱니바퀴에 빠져들자 한번의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렇게 해서 일평생 거짓말의 악순환에 빠져들어...]

그 시절은 그의 인생의 공백으로 남아있다. 

부모하고는 자기가 병자라는 상황을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말을 나누었다. 부모들에게는 그의 온갖 회의와 우울증이 변덕으로만 비춰졌기 때문이었다. 

시험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진 그로서는 형식만 따라가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분기점이 시작되었다. 

나의 선택이 내 의지에 따른게 아니라 어떤 신비한 사건에 관련된 의무였음을 보여주는 이 작은 해프닝은 결국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더욱 더 당혹스러운 상황은 그 같은 광기가 두 시기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실수로 귀중한 자료의 삭제버튼을 누른 컴퓨터 사용자가 정말로 그 자료를 없애버리길 원하시냐는 프로그램의 질문에 그럴건지 아닌지를 한참 숙고한 뒤에도 확인 버튼을 눌러버린 그런 상황과 같다. 

도중에 잠깐 비틀어진 셈이지만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으나 아직은 스스로 추스릴 시간이 있고, 다른 사람을 따라잡을 시간도 있다...... 그는 조금씩 유령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뤼크에게 진실을 말한다는 건 그의 면전에서 무너져 내리는 일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가 애지중지 해오던 몽상이었다. 그리하여 회복 가능성이 없이 그저 불가피한 재난을 기다리고만 있는 위기의 시절을 보낸 후 환자의 정신상태를 자기 안에 들어 앉혔다. 신중한 용기가 주위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그런 환자의 정신상태를 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기 행각대신에 림프암을 고백한 것은 결국 너무도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현실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바꿔놓은 셈이 되었다. 

책 읽는 기계가 되어 버린 건가?

냄비 빌려간 남자처럼 변명을 한 셈이다. 

실제로 그에게 ...... 밖으로 나서면 그는 완전히 헐벗은 상태였다. 부재 상태로, 빈곳으로, 그의 상황은 어쩌다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매일같이 겪는 유일한 삶의 현장이었다. 그는 분기점 이전에는 다른 사람을 만난적이 한번도 없었다. 

(옮긴이) 장클로드로망은 작가가 더이상 건드릴 것도 없이 제자신의 삶을 이미 모조리 다 파헤쳐 놓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이 이야기를 글로 써 내고자 했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한 가짜 삶을 영위하던 그 오랜 세월동안 살인자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생각들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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