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예전에 읽었던 문장들이다.
11년 전 따로 적어 둔 글귀 들을 다시 찾아 본다.
배고픔의 자서전 / 아멜리 노통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노통의 가족은 일본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노통은 뉴욕에 매료된다.
나는 이런 노통의 문체가 좋다.
노통의 가족은 일본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노통은 뉴욕에 매료된다.
나는 이런 노통의 문체가 좋다.
도시가 모두 일어 서 있었다.
고층 빌딩같은 여자.
하루는 발레 공연을 보았다.
나는 몸이 나는 데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언어들이 바벨탑처럼 나를 선택했다.
언니는 시가 육화된 사람이었다.
그후 또다시 아버지를 따라
내전이 잦은 국가로 떠난다.
언니와 노통은 미친듯이 책만 읽는다
얀센파적 생활양식. 랭보의 시.
장기간의 단식보다
훌륭한 물질주의의 선생은 없는 법이다.
노통의 책 속에 언급된 책을 보면
읽어보고 싶어져 손발이 오그라든다
<몽테를랑-젊은 처녀들> <금각사>
<쿠오바디스> <파르마의 수도원>
<초록밀랍> <탱탱>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고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 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말이다.
(옮긴기의 말)
그녀의 배고픔은 타인에 대한 소통과 열망,
우리 존재를 규정하는 세계,
그 보편적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그녀는 이런 배고픔을 분출하는 통로로
책읽기를 택한다.
독서는 수수께끼같은 존재의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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