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침 소외감을 인식했다.
담론 / 신영복
14장 비극미
예술의 본령은 우리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미는 아름다움 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글자 그대로 '앎'입니다. 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미입니다.
비극이 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얇은 옷을 입은 사람이 겨울 추위를 정직하게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한매, 늦가을 서리를 맞으며 피는 황국을 기리는 문화가 바로 비극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입니다. 우리가 비극에 공감하는 것은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세상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시서화 그리고 음악 역시 세계 인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불편하게 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가까이 하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아름다움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토 딕스 Otto Dix의 <전쟁>이나 케테 콜비츠 Kathe Kollwiz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편치 않은 마음을 안겨 주고 고통과 긴장 상태로 이끌고 갑니다. 통상적 의미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불우한 처지의 생명을 위로하기 보다는 그것을 냉정하게 직시하게 함으로써 생명의 위상을 새롭게 바꾸어 가도록 합니다. 그런 뜻에서 '아름다움'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성찰' '세계 인식'과 직결됩니다.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림이지만 우리가 처한 세계의 실상을 대면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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